검색

    최근 검색어

    상품 모아보기

    ep04. 배추에서 김치가 되는 시간

    배추의 시간, 김치가 되는 시간

    현관문 앞에 아이스박스가 놓여 있다. 이틀 전 주문한 김치다. 테이프를 제거하고 뚜껑을 열어보니 꽁꽁 얼린 아이스팩 두 개와 포기김치 하나, 파김치 하나가 가지런히 들어있다. 봉투를 주방으로 가져가 요리조리 돌려봤다. 잠금장치가 이중이다. 재활용이 가능한 케이블타이를 푸르고 가위로 비닐을 잘랐다. 깊게 베인 양념 냄새가 올라온다. 적당한 통을 찾아 김치를 옮기는데 아뿔싸 입에 침이 고인다. 한 손으로 김치의 꽁다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쭉 찢었다. 아무도 없는 주방에서 김치를 통에 옮기다가 그 자리에서 한 입 먹어본 사람은 안다. 먹음직스러운 빛깔은 물론 냄새에도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용감한 행동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날 그렇게 먹은 김치가 한국농협김치의 포기김치였다.

    어느 날의 김치 공장

    “공장이 생각보다 넓습니다.” 경기도 연천의 한국농협김치 연천 지사 이영근 팀장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에 4천 평 가량의 공장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다. 공장의 입구에 들어서면 중요한 원부재료의 냉장창고와 묵은지를 위한 냉장창고가 있다. 오른쪽으로 돌면 긴 통로가 있는데 통로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1현장, 왼쪽은 2현장 즉, 두 개의 공장에서 김치를 만든다. 통로를 빠져나와 바깥으로 나오면 플라스틱 박스들이 기분 좋게 정리되어 있다. 박스는 색깔별로 용도를 구분하여 세척이 필요한 것은 따로 마련된 박스 세척실에서 재탄생한다. 이영근 팀장은 걸으면서 이야기하다가도 중요한 순간에는 멈춰 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령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말이다. “이 공장에는 국내산 재료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김장용 배추의 수확 시기만 알고 있던 나는 다른 계절에는 배추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했다. 한 걸음 걷다 다시 멈춘 이영근 팀장은 배추 출하 시기에 관해 설명해 줬다. “수확 시기별로 다 다른 산지에서 공급받습니다. 1월과 2월에는 해남 배추를 수확하고 저장해서 4월까지 사용하고요. 5월과 6월은 충청도와 연천군 내의 노지 배추를, 여름에는 강원도 고랭지 배추를 사용하고, 9월과 10월에도 연천군 내의 노지 배추를 사용합니다. 11월이 되면 해남의 김장용 배추를 수확해서 사용하고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깔끔한 설명이었다.

    한 바퀴를 돌고 공장의 입구에 다다를 때쯤 다른 벽면의 냉장창고에 들렀다. 창고 앞에 길게 늘어진 끈을 아래로 힘껏 잡아당기니 둔탁한 소리를 내며 창고 문이 열렸다. 뿜어져 나오는 냉기에 정신이 번쩍 뜨인다. 넓은 창고에 비해 재료의 양은 소박했다. 재료는 당일 생산하는 만큼 수급하고 그때그때 사용할 만큼만 저장한다. 창고의 냉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해진 양만 보관하는 이유도 있지만, 신선한 재료를 원활하게 수급받을 수 있는 농협의 강점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공장에 들어가기 위한 다섯 단계

    김치 공장의 장벽은 높다. 공장 내부는 크게 일반 구역과 청결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청결 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배추든 사람이든 다섯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먼저 사람의 경우, 가릴 수 있는 모든 곳을 가린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고무줄 처리가 된 모자로 머리카락 한 올까지 숨긴다. 손목에도 고무줄 처리가 된 위생복의 앞섶 단추를 무릎 아래까지 잠그면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어야 한다. 한쪽 벽면에 걸린 테이프 클리너로 위생복 표면의 먼지를 제거하면 그제야 개수대 앞에서 손을 씻을 수 있다. 비누로 손을 씻고, 바람에 물기를 말리고, 소독기에 손을 넣어 마지막 소독을 한다. 미로 같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에어 샤워부스가 우리를 기다린다. 자동문을 열고 부스 안으로 들어가 양팔을 머리 높이까지 올리면 양쪽에서 강한 바람이 모든 먼지와 균을 털어내겠다는 심산으로 쏜다. 바람이 살짝 무서워질 때쯤 반대쪽 문이 열린다. 바닥에는 장화를 소독할 수 있는 발판이 준비되어 있다. 발판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 장화 소독까지 완료다. 드디어 청결 구역으로 입장할 수 있다. “모든 작업자가 이 과정을 매일 수시로 거칩니다. 이 경로에서는 되돌아갈 수 없어요. 무조건 앞으로만 갈 수 있어요.” 품질 관리부의 이진희 계장은 청결 구역의 문을 열며 단호하게 말했다.

    배추도 우리처럼 청결 구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다섯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일반 구역에서 1차 겉잎과 푸른 잎 제거를 마치고,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올라와 반으로 나뉜다. 이절된 배추는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서 2차 선별 과정을 거친다. 맨눈으로 봤을 때 상태가 좋지 않은 배추는 탈락한다.

    무사히 통과한 배추는 계절과 그날의 날씨에 따라 매일 새로 만드는 염수에 절여지고, 애벌 세척통으로 이동한다. 시간마다 교체되는 깨끗한 상수도에서 애벌 세척한 배추는 3단 자동 세척 과정을 거친다. 작업자분들의 빠른 손놀림에 입이 벌어지는 동안 이진희 계장은 놀라기에 아직 이르다는 듯 덧붙인다. “그냥 세척 하시는 것 같지만 자사 CCP*기준에 맞춰서 배추를 몇 번 흔들어야 하는지, 벨트에는 몇 개를 올려야 하는지 모두 정해진 규칙대로 하고 계신 거예요.”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한 배추만이 청결 구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 드디어 양념과 만나는가 싶었는데 김칫소 넣기 작업에 앞서 최종 검수에 해당하는 ‘최종 낱장 선별’까지 통과해야 우리가 아는 그 김치로 탄생한다. 모든 재료가 이 엄격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김치가 된다.

    CCP :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관리하는 HACCP은 식품의 원료 생산부터 최종 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 각 단계에서 해당 식품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관리시스템이다. HACCP 인증을 받기 위해서 공장의 전 공정에서 CCP(중요관리점)를 설정해 기준에 따라 관리하고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농협김치의 모든 공장은 해마다 CCP를 점검하고 모든 작업자가 기준에 맞춰 작업을 한다.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아 불리한 김치

    한국농협김치는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는다. 인공 발효액을 사용하지 않는다. 신선한 원부재료의 맛과 자연 발효로 승부를 걸었다. 발효 식품의 결정체라는 김치의 정체성과 가장 부합한 김치를 만든다. 이 부분이 때로는 불리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보통 감칠맛이라고 하죠. 당장 먹기에는 좋아도 조금만 익히면 맛이 없어져요.” 이만수 대표도 알고 있다. 화학조미료가 순간을 사로잡는 비법이라는 것. 하지만 한국농협김치는 길고 넓게 봤다. 불필요한 양념과 화학조미료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익을수록 시원한 맛을 내면서 배추가 금방 무르지 않는 우리 김치의 정체성을 선택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진희 계장은 한국농협김치에서 만든 포기김치가 가장 맛있는 시기는 김치를 받고 20일~28일이 지난 후라고 얘기한다. 어느 정도 자연 발효가 일어난 후에 김치의 시원한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치는 지역별로, 집마다 다른 조리법과 고유한 맛이 있다. 김치를 보면 그 집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다양한 얼굴을 가진 식품이다. 그만큼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기 힘들다. 재료가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직접 담가야 한다는 인식이 짙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한국농협김치가 지향하는 김치의 정체성은 화학조미료 대신 버섯을 활용한 천연 조미료를, 인공 발효액의 도움이 아닌 자연 발효로 완성되는 정직한 김치다. 정직한 일에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하다.

    농협의 마음

    “쌀과 김치만큼은 농협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농협이 고집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선이 있고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만수 대표는 그만큼 전통 김치에 대한 확신과 책임감이 있었다. 농협의 출발점이자 구심점인 농가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길을 걷는다. 농민은 영농 활동에 집중할 수 있고 농협은 신선한 재료를 원활하게 유통할 수 있다. 그 상생의 결과물을 소비자는 김치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캐나다 등 수출 활동에도 활발한 한국농협김치는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닌 국내에 유통되는 동일한 김치를 수출한다. 간혹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입산 재료를 사용하는 곳도 있지만, 농협은 농협이다. 전통 김치에 대한 자신감, 결국에는 전통 김치가 선택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농협의 마음이다.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고객

    김치맛선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된 고객층은 농협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류다. 매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사는 고객도 아니고, TV 홈쇼핑을 통해 구매하는 고객도 아니다.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다양한 식료품을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구매하는, 농협에게는 새로운 유형의 고객이다. 농산물이 쇼핑몰에서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이 되기까지 몇 겹의 시간이 필요했는지 이만수 대표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치는 꼭 집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세대의 마음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편리한 이 서비스가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맛볼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또다시 몇 겹의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우리 농산물로 정직하게 만든 김치, 질리지 않는 김치, 언제 먹어도 비슷한 맛의 김치라면 고객이 먼저 찾는 김치가 되지 않을까.

    이 글에는 한국농협김치 공장의 극히 일부분만 담겨있다. 교차 오염을 줄이기 위해서 망 배추가 아닌 박스로 배추를 관리하고, 일반 구역 실험실에서는 매일 입고되는 원재료의 미생물 검사를 진행한다. 모든 공정이 진행되는 중간에는 정해진 도구로 바닥의 물기가 마를 새 없이 수시로 쓸고 닦는다. 작업자의 안전과 위생을 위한 또 다른 공정이다. 오전에는 전날 절인 배추에 속을 넣고, 오후에는 세척과 절임 공정이 진행되며 하루의 끝은 공장 전체를 청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저희의 일이 굉장히 반복적인 일처럼 보이지만, 모두 사명감을 느끼고 있거든요.” 입사 5년 차 이진희 계장의 뿌듯함은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누군가 김치 공장에 관해 물어본다면 배추의 시간, 김치가 되는 시간을 묘사해 줄 것이다. 조금 더 보태서 세상에 결코 쉽게 탄생하는 것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정원사 에디터
    이원희

    어린 시절 쓰고 그리는 일에 흥미를 느꼈지만, 모종의 이유로 의상 디자인을 공부했다.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쓰고 그리는 일로 돌아와 직업인으로 살고 있다. 마치 먼 여행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저서로는 『그리고 벽』, 『영화 포스터 그리고 사람들』 등이 있으며 현재 포토그래퍼 정은지와 함께 AVEC 매거진을 발행하고, 스튜디오 정원사를 운영하고 있다.

    정원사 포토그래퍼
    정은지

    사진과 디자인 등 비주얼 분야의 작업을 선보이는 디자인 스튜디오 정원사(@jeongwonsa.kr)의 포토그래퍼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한다.